박사후연구원/포닥 과정

영국 3주차 - 가장 많이 하고 사는 말

Job생각 2021. 9. 9. 07:20
728x90

비록 약 3주의 영국 생활 동안 절반 이상을 자가격리로 보냈지만, 자가격리 중에도 은근히 영어를 쓰고 들을 일이 많다.

집 계약 관련 전화를 1시간 가까이했고 (코로나로 비대면으로 하느라), 각종 택배나 배달앱을 이용해도 현관 열어달라는 전화, 집 앞에 나와서 받아달라는 전화 등, 짧게 혹은 길게 영어를 쓸 일이 자주 있었다.

격리가 끝나갈때 즈음부터 지금까지는, 포닥 오리엔테이션이나 지도교수 미팅, 우체국이나 은행 등 각종 업무를 위해서도 영어를 쓰게 된다. (쓰다 보니 너무 당연한데?)

한국의 주입식 영어교육에 30년간 숙성된 나는, 누가 불쑥 말이라도 걸면 어떡하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박산데 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있지 않을까? 영국 영어는 미국 영어랑 또 매우 달라서 아예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출국 전부터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대충 이런저런 해프닝들을 겪어보고 부딪혀본 후인 지금 느낀건, 괜히 졸았다는 것이다.

영국은 수많은 외국인들이 살고있고, 특히 대학교 근처에는 오히려 중국인이 더 많이 보이 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내게 매우 친절했다. 여러 외국인 유튜버들이 한국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들을 보면 한국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는 말이 많지만, 나는 이곳 사람들 역시 한국인들 못지않게 친절하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 배달음식을 시키면, 말없이 문 앞에 툭 놓고 가거나, 직접 받아도 맛있게 드세요 이외에 말은 딱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식료품이나 음식배달을 시켜서 마주하면 배달원들은 꼭 내게 먼저 안부인사를 건네고, 오늘 날씨가 어떻다, 오는데 차가 안막혀서 금방왔다, 퇴근을 일찍했나보네요, 등등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나마 몇 마디라도 대화를 주고받고 싶어 했다.

물론 내가 외국인이고 딱 봐도 온 지 얼마 안 되어 보여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난 한국처럼 딱 할 것만 하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How are you / I'm fine thank you와 같은 유치원 영어라도 한마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좋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인종차별 이슈가 좀 심해진 것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위축도 되어있었지만, 모두들 나의 뚝뚝 끊기는 영어를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주려 하고, 또 친절히 답해주고 있다.

약 20일 동안의 영국 생활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말은, 물론 "Sorry?"이다.

교과서식 영어에서는 "I beg your pardon?"으로 배워왔지만, 어느새 내 입엔 "Sorry?" "Uh.. Sorry?"가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다.

내가 잘 못 알아들어 되물으면 비슷하거나 좀 더 쉬운 단어로 열심히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들이 너무 고맙다. 못 알아들어도 누구도 짜증 내거나 '이걸 왜 못 알아듣지?'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접한 사람들이 교수님이나 서비스업 직종의 사람들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728x90

30년을 한국에서만 살면서 심지어 한국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 탓에 외국에서 영어만 쓰면서 당분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긴장되고 걱정도 되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다. 수많은 Sorry? 와 함께.

한국은 정말 엄청나게 효율적이고 편리한 나라임을 점점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영국은 조금 덜 편리한 대신 많은 대화로 물어물어 가면서 시설을 이용하고 정보를 얻는 나라인 것 같다.

이제 슬슬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며 바쁘게 살아가겠지만 연구실적을 쌓아가는 만큼 회화 스킬도 많이 쌓아갈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p.s. 직접 대면해서 뭔가를 할 때는 매우 적극적이고 친절하지만... 메일을 주고받을 때는 (전기 신청이나 세금납부 등) 응대 속도가 너~~ 무 느리다 ㅜㅜ 여기저기 찾아보니 원래 여기서 메일로 뭘 물어보거나 요청하려면 한세월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ㅎㅎ;;

딱히 올릴 사진이 없어서 그냥 올려본 집앞 공원의 오리들.

300x250